1차 왕자의 난은 정당화될 수 없다.
논점 1. 살해가 필수불가결한 방법이 아니다.
왕자의 난을 일으키는 과정에서 살해는 필수불가결하지 않았다.
유배, 폐위 등 세자 이방석의 권력을 소멸시킬 수 있는 수많은 방법이 존재함에도,
이방원은 가장 잔인하며, 도덕적 결함이 가장 큰 살해를 선택하였다.
이때 살해된 사람만 해도 정도전, 이방석, 이방번, 정도저의 세 아들들, 이제, 남은 등이 있다.
논점 2. 왕명에 대한 반역이다.
이 당시 왕의 명령은 절대적이었으며, 심지어 어명 = 아버지의 뜻이었다.
방석이 양녕대군마냥 큰 잘못을 저지른 적도 없기에
이는 왕자의 난의 명분에 치명적인 결함을 만든다.
논점 3. 사회 혼란을 가져온다.
왕가의 일은 전국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무신정변기에 천민 출신이 정권을 잡자 반란이 일어났듯이,
큰 사회 혼란을 가져올 수 있으며, "힘의 논리"를 따라야 한다는 시민의식이 퍼질 수 있다.
힘의 논리를 그대로 따르자는 주장은 지속가능하지 않고, 불안정하다.
"죄와 벌"에서 라스콜니코프의 꿈으로 묘사되었듯, 힘의 논리를 그대로 따르는 사회는 붕괴되기 쉽다.
반박 1. 왕권 강화에 필수적이었다.
일반적인 경우 태조의 사후 왕위가 계승되기에,
태조의 사망 시기에는 세자 시기에 적절한 교육을 받아 준비된 왕이 될 수 있다.
이를 통해 충분한 소양을 지닌 왕, 즉 왕권이 강한 왕이 될 수 있다.
즉, 왕자의 난 없이 왕권을 강화하고 새 미래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 것이다.
반박 2. 방석의 세자 책봉 자체가 불합리했다.
신덕왕후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였으며,
적장자 세습이 강한 관례였긴 하나
그것은 법이 아닌 관례이고, 왕명은 왕명이고, 악법도 법이다.
또한 전체 왕위계승과정을 보았을 때,
결국 이방원도 이방간 등의 형을 제치고 왕위에 올라
이 또한 이방원이 왕위에 오를 근거가 부족하고 불합리하다.
반박 3. 이방원은 능력이 있었다. (=결국 좋은 결과를 냈다.)
목적론적 사유방식에 따른 결론이다.
중요한 것은 당시의 시점이다.
이방원이 과거를 통과하는 등 총명했다고 하나,
왕으로서의 이방원이 어떨지는 알 수 없었으며,
왕으로서의 이방석도 마찬가지다.
다만 우리가 고려할 수 있는 것은
왕자로서 태어난 자와 무인의 아들로서 태어난 자의 차이다.
전자의 경우 더 어린나이부터 세자로서, 왕으로서의 교육이 가능하다.
이는 이방석의 능력으로 직결된다.